위대한 책들을 읽고 나면, 수많은 책들이 꽂힌 책장이 새롭게 보입니다. 잡동사니 애물단지에서 아름다운 보물로 다가옵니다. 오, 엄청난 가치를 품은 저 보물들! 아래 목록은 내 장서들이 무분별한 과소비의 산물이 아니라, 내 인생을 바꿀 가능성의 보고로 여기도록 만든 책들입니다. 경탄하며 읽었고, 책장을 덮을 즈음엔 나의 숭배를 이끌어낸 책들!

 

2013Zorbabest_01

에드워드의 사이드의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책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분석하고서 인문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실천적으로 모색하거나 작가와 지식인의 역할을 모색한 글 등을 모았습니다. 나는 1장 ‘인문주의의 영역’을 읽으며 인문정신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인문주의자로서의 삶을 꿈꾸었습니다. 4장에서는 사이드가 최고의 인문서로 꼽은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읽기로 마음 먹었고요. 사이드는 비판을 인문정신의 정수라 여겼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날선 비판의식이 무엇인지 체험했습니다.

 

 

2013Zorbabest_02

7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찬미한 비평 에세이입니다. (폴 굿맨, 엘리아스 카네티,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앙토냉 아르토, 리펜슈탈, 지버베르크.) 찬미와 숭배는 비평가로서의 손택 글쓰기의 특징입니다. 그녀는 책을 읽거나 영화나 연극서 보고서 자신의 미학관으로 비평합니다. 그리고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 예술 작품에 열광합니다. <우울한 열정>은 손택이 찬미와 열광으로 써낸 오마주의 기록입니다. 문화비평을 하고 싶은 제게 수잔 손택은 우상이요, 스승이요, 푯대입니다.

 

 

2013Zorbabest_03

비평을 소설에 기생하는 문학의 하위분류가 아닌 하나의 문학 장르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문학비평가 김현! <분석과 해석>은 그의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비평집입니다. ‘비평의 유형학을 향하여’라는 글에 매우 큰 감명을 받았고, 한국문학 전반을 폭넓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김현의 글을 읽으면, 그가 문학을 ‘공부’했다기보다는 ‘읽고 즐겼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공부’라는 단어로 문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지만, 저 역시 의무보다는 특권과 향유의 의미로 문학에 다가갑니다. 문학은 나를 즐겁게 합니다.

 

 

2013Zorbabest_04

2013년은 고대 그리스에 친숙해진 해입니다. 그리스 문명이 지성사에서 갖는 절대권위를 생각하면 인문학 공부의 초석을 닦은 셈입니다. 호메로스는 당연하고 에우리피데스, 헤시오도스 등의 작가들이 무슨 책을 썼고 그 책들이 차지한 지성사적 위상 정도는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케네 문명에서부터 페르시아 전쟁을 거쳐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서서히 몰락해가는 그리스의 역사에도 눈이 밝아졌습니다. 여러 권의 저서 덕분이지만, 열정과 해석력을 갖춘 탁월한 학자인 ‘앙드레 보나르’라는 첫 선생을 잘 만난 행운이 컸습니다.

 

 

2013Zorbabest_05

가출 청소년과 폭주족의 세계를 잘 보여 준 작품입니다.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배경으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느낌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수디르 벤카테시가 목숨을 걸고 어두운 세계에 잠입하여 쓴 <괴짜 사회학>이란 책이 있습니다. 마약상, 코카인 중독자, 무단입주자, 매춘부, 포주, 경찰, 주민대표와 어울리며 가난과 빈곤의 진짜 얼굴을 그려낸 책입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가득하여 구체적인 모습을 포착한 학자가 서사까지 다룰 줄 안다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은 소설을 쓰겠지요. 바꾸어 말하면, 김영하는 인간의 내면을 꿰뚫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석구석을 통찰하는 사회학자의 눈도 가졌습니다. 훌륭한 작가입니다. 올해 최고로 감탄하며 읽은 소설입니다.

 

 

2013Zorbabest_06

구본형 선생님이 위독하셨을 때부터 읽기 시작하여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마저 읽었던 책입니다. <일상의 황홀>과 함께 그의 저서 중 가장 자전적인 책입니다. 40대의 십년을 돌아보며 ‘마흔 살, 직장생활, 가족, 자연, 건강, 학습, 일’ 등 11개의 키워드로 구분하여 기록한 자기표현의 글입니다. 선생의 아홉 번째 책으로, 그가 지닌 통찰과 따뜻한 시선은 여전합니다. 마흔 무렵에 집어 들면 가장 공감하며 읽을 책이지만(특히 1~2장), 연령대와 상관없이 읽어도 괜찮습니다. 지혜와 자유로움이 특정 연령대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2013Zorbabest_07

일찍이 쇼펜하우너는 “다 아는 이야기를 쓰되,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전하는 것”에 진짜 예술이 있다고 했습니다. 소설이라는 예술은 가장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다음으로는 희곡과 시가 뒤따릅니다. 형식에서 가장 자유로운 문학은 에세이입니다. 그렇기에 종종 홀대 받거나 가당치 않은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요네하라 마리와 같은 에세이스트는 오해를 걷어냅니다. 에세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 중의 한 명입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마리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솜씨와 서사를 끌어내는 능력까지 맛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2013Zorbabest_08

원제는 ‘하나의 세계문학 도서관’입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거장이 엄선한 세계문학의 추천도서 목록을 받아드는 겁니다. 저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헤세도 비슷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명작들을 자유롭게 선정하여 일과 후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인간이 생각하고 추구한 것들의 너비와 깊이를 깨닫고 인류의 삶과 심장의 소리에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헤세는 말합니다.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라고 널리 인정되는 객관적인 목록과 헤세가 특히 빠져들었던 주관적 목록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문고본의 작은 책인데, 제겐 흥분되는 책입니다.

 

 

2013Zorbabest_09

이론철학이 아닌 실천철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니체도 철학자이니 체계적인 이론적 사유로도 책을 썼지만, 사상가와 예술가처럼 아포리즘을 던지거나 에세이처럼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처럼 삶의 실제적인 유익을 생각하며 쓴 책도 있고요. 이 책은 니체 입문서로도 좋습니다. 니체가 만년에 자신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하기 위해 쓴 책이거든요. 입문서의 조건이라 할 전반적인 소개와 가독성을 갖추기도 했고요. 제목의 이 사람은 ‘니체’ 자신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 나는 나를 보여주지 않은 채로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보라>는 책세상 니체전집 15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2013Zorbabest_10

고종석은 2005년 3월부터 일년동안 한국일보에 「시인공화국 풍경들」을 연재했고 이는 <모국어의 속살>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말들의 풍경>은 그 이후의 연재를 묶은 책으로, ‘한국 현대시’에서 ‘언어 전반’으로 주제를 확대하여 썼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언어의 생태학, 다시 말해 ‘말들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다뤘다. 1부는 언어의 생태학, 2부는 서평, 3부는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도 말하듯이 목차는 비체계적입니다. 작가가 책을 언어학 교과서가 아니라 언어학 에세이라 부른 까닭입니다. 하지만 개개의 글은 훌륭합니다. 제겐 2부의 서평만으로도 값어치를 톡톡히 한 책입니다.

 

 

10권의 책을 읽은 소감을 간략하게라도 쓰고 나니 그럴듯하게 보이는군요. 실상은 별 것 없습니다. 순위를 매기긴 했지만, 순위를 가늠할 엄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요컨대, 여러분도 읽은 책들을 일갈하며 도움을 받거나 영향을 받은 순위를 매겨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듯하게 보일 겁니다. 남의 떡은 커 보이잖아요.

- 폼 한 번 잡아본, 조르바.

Leave a Reply